당신의 무관심 때문에 지옥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존재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존재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지옥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지만 생명의 충만은 없다.
관심이 있지만 행동으로 나타나는 관심은 없다.
흥미가 있지만 감동은 없다. 재능이 있지만 봉사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게으름은 만성이 되었고,
우리는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다.
지옥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무관심한 죄가
어찌하여 우리 가운데 만연한가?
다시 말하지만, 이런 무관심은 죄이다.성경에는 사람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사이에 가라지를 뿌렸다는 비유가 나온다.
신문 배달을 하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청년은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을 것이고,
세상에서 성공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기도하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광신자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어떤 남자가 일주일에 담배와 술과 오락을 하는 데
얼마를 쓰기로 정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생활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형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얼마를 십일조를 내면, 사람들을 그가
게으른 설교자에게 돈을 뜯긴다고 수군거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직장 동료들은 그를 바보 취급할 것이다.
정말 완전히 거꾸로 된 세상이다!
우리의 가치관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1)
하나님께서 우리의 달란트를 영원히 거두어 가시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해야 할 때이다.
당신이 전해야 할 것이 없는가?
약속이나 경고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당신의 마음이 돌같이 굳어버린 것인가?
우리 신자들은 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한걸음에 달려간다.
그렇지만 그렇게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이웃집을
백여 가구나 지나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정신이 해이하고 욕심 많고 게으른 라오디게아교인들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토하여 내치실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같이 그리스도께 열중하고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숭모의 감정으로
주님을 사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럴 경우,
우리는 구주께서 제공하시는 안식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결코 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보다 훨씬 더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바람이시여,
우리의 이 숨 막히는 무관심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통로를 꽉 막고 있으니 우리에게 불어와 시원하게 뚫어주소서!
<레오나드 레이븐힐, 소돔에는 말씀이 없었다>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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